헤르타 뮐러 [숨그네], 문학동네 by joo

그시간을 살아내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 동강이의 시간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
담담하고 단순할 수록 더 깊히 느껴지는 처절함으로 지금을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층위의 아픔을 짐작해볼 수 있게 해주는 책.
인간은 이렇게도 살아낼 수 있구나....

그리고 마음에 드는 표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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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점호 때나 식당에서 얼굴만 익히고 지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서 쓰러진 경우가 아니면 죽은 사람으로 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묻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보다 빨리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시각적인 기억이 많을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두려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다가 무심의 경지에 이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죽은 사람을 발견하지마자 어떻게 그리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죽은 사람을 보면 팔다리가 굳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기 전에 서둘러 옷을 벗겨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그가 아껴둔 빵을 베개에서 꺼내야 한다. 그렇게 말끔히 정리하는 것이 우리가 애도하는 방식이다. 막사에 들것이 도착하면 수용소 간부들이 시체만 가져갈 수 있게 다른 것은 없어야 한다. 
  죽은 사람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전리품만 보인다. 시체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악의적인 행동이 아니다. 입장이 바뀐다면 죽은 사람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수용소는 실용적인 세계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사치다. 흔들림 없이, 어설픔 만족감으로 시체를 처리한다.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감정과는 다르다. 죽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줄어들수록 삶에 더 악착같이 매달리게 되는 듯하다. 그만큼 착각은 더 심해진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수용소로 간 거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사실은 효력이 없다, 사람들은 그 반대를 믿는다. 빵 법정처럼 시체 처리도 현재만을 안다. 하지만 난폭하지 않다. 공정하고 순하게 진행된다.

  .... 엽서에 쓰인 말은 단 한 줄이었고, 나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한 줄 글 아래 흰 여백에조차도.
  나는 러시아인 마을에서 음식을 구걸하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에게 내 안부를 물어달라고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은 이 년 동안 답장을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이 년 배고픈 천사에게 구걸을 배웠다. 남은 이 년에는 거친 자존심을 배웠다. 그것은 빵 앞에서 의연하게 버티는 것처럼 거친 무엇이었다. 배고픈 천사는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배고픈 천사는 매일 어머니를 보여주었다. 어머니가 내 삶을 외면하고 대리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모습을. 홀가분하고 여유로운 어머니가 내 머릿속에서 하얀 유모차를 이리저리 몬다. 나는 사방에서 어머니를 바라본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 한 줄 글 아래 흰 여백에서조차.

  ...하루하루가 원인과 결과의 굴레가 되어가는 것이 세월 탓은 아니었다.
  일의 경과는 그랬다. 누구도 책임이 없었기에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었다. 

  수용소를 나온 지 육십 년이 지나도 음식을 먹을 때면 너무나 흥분된다. 나는 온몸의 구멍을 모두 열어젖히고 먹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은 불편하다. 먹을 때 나는 독재자다. 입의 행복을 모르는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예의를 차리며 먹는다. 그러나 먹을 때 내 머릿속에는 여기 앉아 있는 우리처럼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올 한방울 넘치는 행복이 스처간다. 머릿속의 새둥지, 숨결 속의 그네, 가슴속의 펌프, 배 속의 대기실을 내주어야 할 그 순간. 먹는 게 너무 좋아서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먹을 수 없으니까. 나는 지난 육십년 동안 나의 귀향이 수용소의 행복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음을 안다. 수용소의 행복은 그의 배고픈 입으로 오늘도 내 모든 감정의 한복판을 베어 문다. 내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매일같이 다른 허기가 생겨나 채워지기를 기다리지만 나는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줄 수 없다. 나는 배고픔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자부심이 아니라 겸허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회반죽 운반이 직업인가. 삼 년 내내 회반죽을 나르고, 슬래그벽돌과 석탄을 샆으로 퍼담고, 땅에서 맨손으로 감자를 파내고, 지하실을 치우는 방법을 배우지만 그게 직업은 아니다. 중노동이지만 직업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노동만 요구될 뿐 직업은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막일꾼이었고, 막일은 직업이 아니다. 

  모든 것이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기에 고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만 예외였다. 고향 땅을 벗어나본 적 없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자유 때문에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감정은 널을 뛰었고, 추락과 비굴함에 길들어 있었으며, 뇌는 복종했다. 

  나는 이미 몇 달째 발로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집에. 묻는 사람도 없었다. 이야기에는 신빙성이 있어야 하는법이다. 나는 아무도 묻지 않는 것이 기쁘면서도, 그 때문에 남모르는 상처를 받았다. 

  나는 자유로운 세상으로 떠밀리듯 보내진다는 공포 때문에 심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그러나 보물은 있다. ...... 그것들은 허름하고, 집요하고, 은밀하고, 혐오스럽고, 잘 잊히고, 쉽게 용서하지 않으며, 닳아도 새것이다. ...... 하나하나 따져보면 당황스러웠다.
  나의 거만한 열등감.
  나의 투덜거리는 두려운 소망들.
  나의 지긋지긋한 조급함, 나는 무(無)에서 곧장 전체로 뛴다.
  나의 방어적인 양보심, 나는 문제가 있을 때 내가 불평할 여지를 남겨두려고 일단 사람들의 의견에 무조건 따라준다.
  나의 비틀거리다 기회를 놓치는 기회주의.
  나의 예의 바른 인색함.
  나의 그리움 섞인 부러움, 인생에서 바라는 게 뭔지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 생기는 그 부러움은 젖은 털실처럼 차갑고 곱실거린다.
  나의 가파르고 텅 빈 수저질, 굶주림이 사라진 이후, 나를 밖에서는 압박하고 안에서는 공허하게 한다.
  나의 뻔하고 치우친 속내, 안짱걸음을 걸으며 나를 와해시키고 만다.
  나의 느린 오후들, 시간은 나와 함께 가구들 사이를 천천히 흐른다.
  나의 누군가를 버리고 떠나는 버릇.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내가 나를 놓아주지 못한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비단 같은 미소를 짓는 법을 안다. 배고픈 천사 이후 나는 누구도 나를 소유하지 못하게 한다.
  나의 보물 중 가장 무거운 것은 노동강박이다. 그것은 강제노동으로의 귀환이고 구조바꿈이다. 배고픈 천사와 닮은, 겸허함을 강요하는 누군가가 내 안에 있다. 그는 다른 보물들을 조련하는 방법을 안다. 그는 내가 자유를 두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내 뇌를 타고 올라가 강박이라는 마법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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