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목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일본사], 뿌리와 이파리 by joo

나조차도 일본이 왜 근현대사 동아시아의 패권을 쥘 수 있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지 못했고(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어쩌다 보니.. 로 생각했던 것 같다. 책을 읽어보니 그 당시 일본이 에도시대 이후 어떤 배경으로 나라를 발달시켜 왔는지와 세계의 동향을 일찍 파악하고 흐름을 타서 패권을 잡을 수 있었던 배경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듯 하다.
(원래 기고했던 월간지나 지은이의 과거 그 정부에 몸담았던 점 등의 맘에 안들기는 하지만...)

책의 내용 간략히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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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C 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덴카비토(천하의 패자)에 오른 후 잠재적 경쟁자인 도쿠가와 이에야쓰를 원래 본거지인 슨푸(현재의 시즈오카:전략적 요충지)에서 에도로 옮길 것을 명함.

이에야쓰는 히데요시의 명을 거스르는 것이 리스크가 커서 쫓겨가듯 에도로 옮김.

당시 에도는 센코쿠시대에 잠깐 떠올랐다가 오랫동안 버려진 땅이었음(작은 어촌마을). 강 하구로 범람이 빈번, 지반이 연약해서 침식, 갈대로 뒤덮인 습지, 해안에 사구와 여울이 많아 배 접근이 어려워 항구로도 불편. 우물 파면 소금물이 올라와 농경도 힘들고 사람이 거주하기 힘든 지역이었음.  기존에 에도 성이 있긴 했지만 방비도 허술하고 규모도 작았음. 즉, 이에야쓰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상황.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성 부터 챙기지 않고 가신들의 주거지를 최우선으로 에도를 개척하기 시작했음. 가신 주거지가 안정되자 물자 보급로 확보와 조카마치(성 주위 상업지역) 조성을 위한 토목 공사에 착수함.
---기본적으로 치수 공사임 : 자연재해 줄이고, 외적침입 방비하고, 물자운송 원활하게 하고, 인간거주&경작을 위한 물 공급을 목표로 인공 물길을 만들고 자연물길의 흐름을 바꾸는 수면을 메우는 토목 공사를 시작함.
---1. 물길 정비 -> 물자 보급로 확충
---2. 생활용수 공급 : 이때 만들어진 일본 최초 수도(에도에서 수 킬로 고이사카와 물 끌어 오는 수로) 만들어지고, 상수, 하수라는 말이 쓰임. 이후 잇다라 상수 개통함.

이런 에도 개척 공사를 수하 총동원 체제로 진력할 수 있었던 이유 :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92년 조선 침공을 했을 때 이후 한반도와 가까웠던 규슈, 시코쿠, 주코쿠 일대 다이묘들은 대규모 병력을 보내야 했지만 히데요시의 명에 따라 순순히 에도로 옮겨 간 이에야스는 병력 차출에서 제외됨(조선에서 멀고 허허벌판으로 옮긴 사정 참작). 다른 다이묘들은 병력도 빠지고 군비 부담도 있었지만 이에야쓰는 그것을 개척하는 힘에 사용함.(후에 조선 침공에 가담하지 않아서 조선 통신사 초청에도 적극적일 수 있었음)

10년 후 정국 태세 바뀜.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은 동군/서군 으로 나뉘어 전쟁.
1600년 이에야쓰가 이끄는 동군이 승리하고 이에야쓰는 최고 실권자인 쇼군에 오름. 이후 막부를 어디에 둘 것인지 고민하다가 에도에 두기로 함(당시 경제 중심지인 오사카에 막부를 두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자신이 개척한 곳으로 정함). 쇼군이 된 후 1. 각 번의 다이묘 세력을 견제, 2. 에도를 계속 개발, 이 두 가지를 동시해 가능하게 하는 계획을 세워서 실행함. 
---> 그것이 전국 다이묘들을 에도에 거주시키는 참근교대제(인질정책) : 저~ 밑에 다시 설명
이에 따라 다이묘와 수행원들이 거처하는 택지가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야쓰는 바다를 매립해 땅을 만들 계획을 세워 실행함(1년만에 여의도 절만 면적 만들어짐)
이때, 에도에 있던 도네가와 동천 치수 공사도 함께 함.(이전까지 계속 범람하고 주변 피해를 입혔음) 도네가와 동천에 둑을 세워 범람하지 못하게 했고, 이때 계속 범람했던 땅은 농지로 바뀜(범람했었던 터라 아주 비옥했음). 이 땅이 간토 평야: 주변 제 1의 곡창지대로 변함(식략 공급 안정)
(이 사례는 모범사례로 다른 다이묘들에게 소개되어 다른 다이묘들이 따라서 했음)

도시기반 확충하고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조카마치(상업지구) 활성화 작업도 병행함.
자유로운 상업을 보장, 거주지 편의 등을 걸고 에도 이주 희망자를 모집해 점차 인구가 많아졌고 18C 초 인구 100만의 대도시로 도약함. 경제 순환형 도시 경제 기초가 마련됨.

*천하보청
일본 봉건제 vs 유럽 봉건제 다른 점 : 유럽의 왕과 제후는 주종관계로 왕이 제후들에게 세금을 부과하고 무력 보유를 억제시킴. 일본의 쇼군과 다이묘는 주종 관계가 아니라 철저히 힘으로 제압하는 관계. 제일 힘쎈 자가 쇼군, 나머지 다이묘들은 각자 자기 번에서 세금을 걷지만 쇼군에게 세금을 내지 않았고, 충성 서약은 군역의 의무로만 지움(다이묘들은 자신의 무력(군대)을 가지고 있음), 그래서 군역의 연장선상에서 성곽을 짓거나, 제방.도로 등을 건설하는 기간 시설 관련 공사에 다이묘가 인력과 자제를 제공하는 의무를 부가함. 이 의무가 천하보청임.

쇼군은 천하보청의 순응도를 다이묘의 충성심 판단 기준으로 삼았고, 저항가능성이 높으면 더 많은 의무를 부과하고 순응시 의무를 경감시켜줌.

다이묘들은 천하보청에 따른 재정 압박 탈피를 위해 정해진 기일 내에 높은 완성도로 사업을 완료하도록 필사적으로 노력함. 
동시에 천하보청을 명 받아 공사를 하지만 공사 완료에 필요한 자재와 기술 등은 가지고 있지 않아서 부족한 자재와 기술을 번 끼리 거래하거나 전문가 인력 시장에서 구해야 했음. 이러한 이유로 자본과 자재, 전문 인력의 수요가 높아지고 시장 거래가 시작됨. 또한 천하보청 압박에 견디기 위한 번 스스로의 행정력을 강화& 번의 세수 증대를 위한 새로운 전답(농토)개간 등에 힘을 기울임.
---> 이러한 배경으로 천하보청이 실시되며 국가에서 거두는 국부(富)가 모두 인프라로 전환됨.

(비교 : 당시 다른 나라들은 세금으로 화폐나 현물을 거두어서 그 과정에서 비효율성과 왜곡된 자본 축적. 잉여가 발생함(=세금이 누군가의 금고로 들어가 사치와 낭비로 소멸). 그에 비해 일본은 천하보청을 실시하여 결과물 형태로 의무를 부과했기 때문에 관리비용 등의 매몰 비용이나 착복 등의 증발 없이 모든 투입이 실물 인프라로 이어짐. 다른 나라의 관리들은 부를 축적하는데 일본의 다이묘들은 자본 축적은 커녕 더 힘들어짐. 번 정부는 동원 인부의 임금을 지급해야 했고 자재 구매 등을 위해 끊임없이 재정을 지출해야 했음. 말단에서 세금 형태로 걷히는 생산물은 천하보청 때문에 노임, 자재 대금 형태로 재분배 됨. 이에 따라 수준 높은 공공 인프라가 창출되었고, 경제활동이 촉진되었으며, 이는 다시 말단 세금 납부자들의 생활 개선으로 이어짐.

*참근교대제
다이묘들을 번을 떠나 에도에 일정기간 머무르게 한 제도.
1년을 단위로 각 번의 번주를 정기적으로 에도에 출부(出府)시켜 머물게 하는 인질제도를 말함. 
참근:에도에 상경하여 머무르는 것, 교대:영지에 복귀하는 것
그전에도 비슷한 형태가 있었고, 1635년 도쿠가와 이에미스가 '무가제법도'로 법제화 시킴.
다이묘들은 정실과 적자를 남겨두고 에도와 번을 오가며 생활해야 함. 

-->이 참근교대제의 경제적 파급 효과 
다이묘들이 에도와 번을 오갈 때와 에도에 체제하고 있을 때 막대한 비용이 소요됨. 100명~500명 이상의 대규모 인원이 수백 km를 이용하는데 드는 비용을 다이묘가 부담해야 했음(각 번의 독자 징세권이 있었기 때문에). 하루라도 늦게 에도에 도착하면 막부의 질책과 함께 막대한 비용 발생했기 때문에 다이묘들은 사전에 선발대를 파견해 치밀하게 일정을 짜고, 혹시 도로사정이 열악하면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 도로를 개보수 하기도 함. 이러한 여행 경비가 전국 도로와 주변에 뿌려짐 => 경제효과 발생.(가장 큰 혜택 : 교통, 숙박의 요지)



참고 : 일본의 막번체제 (지방분권적 요소와 중앙집권적 요소가 혼재되어 있음
박부가 번에 대해 징세권을 행사하지 않음 =>각 번은 관할 지역에서 징수한 세금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음(자치권 핵심)
그러나 원격지의 독립된 재정권 행사는 쇼군에게 잠재적 위협이기 때문에 견제를 위해 천하보청, 참근교대제를 실시함(소홀히 하면 다이묘의 지위를 박탈할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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