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타 뮐러 [숨그네], 문학동네 by joo

그시간을 살아내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한 동강이의 시간을 그려낼 수 있다는 것.
담담하고 단순할 수록 더 깊히 느껴지는 처절함으로 지금을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층위의 아픔을 짐작해볼 수 있게 해주는 책.
인간은 이렇게도 살아낼 수 있구나....

그리고 마음에 드는 표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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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점호 때나 식당에서 얼굴만 익히고 지냈다. 이미 많은 사람이 사라졌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눈앞에서 쓰러진 경우가 아니면 죽은 사람으로 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이 지금 어디 있는지 묻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보다 빨리 사라져간 사람들에 대한 시각적인 기억이 많을수록 두려움도 커졌다. 두려움은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다가 무심의 경지에 이른다. 그러지 않고서야 죽은 사람을 발견하지마자 어떻게 그리 민첩하게 행동할 수 있겠는가. 죽은 사람을 보면 팔다리가 굳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기 전에 서둘러 옷을 벗겨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오기 전에 그가 아껴둔 빵을 베개에서 꺼내야 한다. 그렇게 말끔히 정리하는 것이 우리가 애도하는 방식이다. 막사에 들것이 도착하면 수용소 간부들이 시체만 가져갈 수 있게 다른 것은 없어야 한다. 
  죽은 사람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전리품만 보인다. 시체를 그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악의적인 행동이 아니다. 입장이 바뀐다면 죽은 사람도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든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이다. 수용소는 실용적인 세계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사치다. 흔들림 없이, 어설픔 만족감으로 시체를 처리한다. 남의 불행을 기뻐하는 감정과는 다르다. 죽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이 줄어들수록 삶에 더 악착같이 매달리게 되는 듯하다. 그만큼 착각은 더 심해진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수용소로 간 거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사실은 효력이 없다, 사람들은 그 반대를 믿는다. 빵 법정처럼 시체 처리도 현재만을 안다. 하지만 난폭하지 않다. 공정하고 순하게 진행된다.

  .... 엽서에 쓰인 말은 단 한 줄이었고, 나에 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한 줄 글 아래 흰 여백에조차도.
  나는 러시아인 마을에서 음식을 구걸하는 법을 배웠다. 어머니에게 내 안부를 물어달라고 구걸하고 싶지는 않았다. 남은 이 년 동안 답장을 보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이 년 배고픈 천사에게 구걸을 배웠다. 남은 이 년에는 거친 자존심을 배웠다. 그것은 빵 앞에서 의연하게 버티는 것처럼 거친 무엇이었다. 배고픈 천사는 나를 지독하게 괴롭혔다. 배고픈 천사는 매일 어머니를 보여주었다. 어머니가 내 삶을 외면하고 대리아이에게 밥을 먹이는 모습을. 홀가분하고 여유로운 어머니가 내 머릿속에서 하얀 유모차를 이리저리 몬다. 나는 사방에서 어머니를 바라본다. 내가 보이지 않는다. 한 줄 글 아래 흰 여백에서조차.

  ...하루하루가 원인과 결과의 굴레가 되어가는 것이 세월 탓은 아니었다.
  일의 경과는 그랬다. 누구도 책임이 없었기에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었다. 

  수용소를 나온 지 육십 년이 지나도 음식을 먹을 때면 너무나 흥분된다. 나는 온몸의 구멍을 모두 열어젖히고 먹는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먹는 것은 불편하다. 먹을 때 나는 독재자다. 입의 행복을 모르는 그들은 대화를 나누며 예의를 차리며 먹는다. 그러나 먹을 때 내 머릿속에는 여기 앉아 있는 우리처럼 누구에게나 언젠가는 찾아올 한방울 넘치는 행복이 스처간다. 머릿속의 새둥지, 숨결 속의 그네, 가슴속의 펌프, 배 속의 대기실을 내주어야 할 그 순간. 먹는 게 너무 좋아서 죽고 싶지 않다. 죽으면 먹을 수 없으니까. 나는 지난 육십년 동안 나의 귀향이 수용소의 행복을 누그러뜨리지 못했음을 안다. 수용소의 행복은 그의 배고픈 입으로 오늘도 내 모든 감정의 한복판을 베어 문다. 내 한가운데는 텅 비어 있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매일같이 다른 허기가 생겨나 채워지기를 기다리지만 나는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 나는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줄 수 없다. 나는 배고픔에게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자부심이 아니라 겸허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회반죽 운반이 직업인가. 삼 년 내내 회반죽을 나르고, 슬래그벽돌과 석탄을 샆으로 퍼담고, 땅에서 맨손으로 감자를 파내고, 지하실을 치우는 방법을 배우지만 그게 직업은 아니다. 중노동이지만 직업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노동만 요구될 뿐 직업은 없었다. 우리는 언제나 막일꾼이었고, 막일은 직업이 아니다. 

  모든 것이 떠나지 않고 머물러 있었기에 고향은 달라지지 않았다. 나만 예외였다. 고향 땅을 벗어나본 적 없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자유 때문에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감정은 널을 뛰었고, 추락과 비굴함에 길들어 있었으며, 뇌는 복종했다. 

  나는 이미 몇 달째 발로는 집에 돌아와 있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집에. 묻는 사람도 없었다. 이야기에는 신빙성이 있어야 하는법이다. 나는 아무도 묻지 않는 것이 기쁘면서도, 그 때문에 남모르는 상처를 받았다. 

  나는 자유로운 세상으로 떠밀리듯 보내진다는 공포 때문에 심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그러나 보물은 있다. ...... 그것들은 허름하고, 집요하고, 은밀하고, 혐오스럽고, 잘 잊히고, 쉽게 용서하지 않으며, 닳아도 새것이다. ...... 하나하나 따져보면 당황스러웠다.
  나의 거만한 열등감.
  나의 투덜거리는 두려운 소망들.
  나의 지긋지긋한 조급함, 나는 무(無)에서 곧장 전체로 뛴다.
  나의 방어적인 양보심, 나는 문제가 있을 때 내가 불평할 여지를 남겨두려고 일단 사람들의 의견에 무조건 따라준다.
  나의 비틀거리다 기회를 놓치는 기회주의.
  나의 예의 바른 인색함.
  나의 그리움 섞인 부러움, 인생에서 바라는 게 뭔지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 생기는 그 부러움은 젖은 털실처럼 차갑고 곱실거린다.
  나의 가파르고 텅 빈 수저질, 굶주림이 사라진 이후, 나를 밖에서는 압박하고 안에서는 공허하게 한다.
  나의 뻔하고 치우친 속내, 안짱걸음을 걸으며 나를 와해시키고 만다.
  나의 느린 오후들, 시간은 나와 함께 가구들 사이를 천천히 흐른다.
  나의 누군가를 버리고 떠나는 버릇. 누군가에게 다가가고 싶어도 내가 나를 놓아주지 못한다. 나는 뒤로 물러나며 비단 같은 미소를 짓는 법을 안다. 배고픈 천사 이후 나는 누구도 나를 소유하지 못하게 한다.
  나의 보물 중 가장 무거운 것은 노동강박이다. 그것은 강제노동으로의 귀환이고 구조바꿈이다. 배고픈 천사와 닮은, 겸허함을 강요하는 누군가가 내 안에 있다. 그는 다른 보물들을 조련하는 방법을 안다. 그는 내가 자유를 두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내 뇌를 타고 올라가 강박이라는 마법을 건다. 


이날치 &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by joo

이게 얼마만인가!

엄청 힙하다는 소리하는 4인과 베이스 드러머 들이 뭉친 밴드 이날치..
드럼과 베이스의 반주에 맞추어 현대적으로 부르는 수궁가.

출신이 출신인지라 곱게 한복 차려입고 소리하는 사람들만 보다가 이렇게 힙스터 처럼 입고 나와 이런 서양 비트에 맞추어 소리를 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궁금했었는데... 와우 너무너무너무 신나서 공연내내 엉덩이 들썩들썩~

소리하는 그녀들의 모습을 보니 처음엔 곱게 쪽진 모습이 상상으로 덧씌워졌었는데 그 모습을 상상한 후 다시 그녀들을 보니 참으로 자유분방해 보였다. 아마도 쪽지고 부채 들고 한스럽게 했었겠지? 물론 스냅백 비스듬히 쓴 그도 마찬가지.. 갓과 도포 차림으로 공연 했었겠지 ㅎㅎㅎㅎ 

베이스와 드럼의 감성적 비트에 잘 얼버무린 우리의 소리... (가사 전달력은 전통적 무대나 지금의 무대나 잘 되진 않지만)
너무 멋지고 즐거운 무대였다.

플러스!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의 신비로운 댄스!!
마지막 범내려온다의 자유 분방한 옷차림의 춤도 좋았지만 처음 정장 차림으로 등장해서 우리 가락에 맞는 춤사위에 브레이크 댄스를 결합한 멋진 그 무대가 잊혀지지 않음.. 잘한다~


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창비 by joo

리베카 솔닛은 걷기의 인문학을 읽은 후 좋아진 작가이다. 
환경? 인권? 여성? 반핵? 무슨 말이라도 붙일 수 있는 운동가.
더불어 자신의 생각을 신뢰를 주는 문장으로 적어내려갈 수 있는 작가.
이번 책에는 그녀의 사진이 있어서 얼굴도 만날 수 있었는데, 멋지기까지! (이젠 늙었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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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지금보다 젊었을 때, 드넓은 대학 캠퍼스에서 여학생들이 강간을 당하자 대학 측은 모든 여학생에게 해가 지면 밖에 나가지 말라고, 아니면 아예 나돌아다니지 말라고 일렀다. 건물 안에 있어라. (감금은 호시탐탐 여성을 감싸려고 대기하고 있다.) 그러자 웬 장난꾸러기들이 다른 처방법을 주장하는 포스터를 내붙였다. 해가 진 뒤에는 캠퍼스에서 남자를 몽땅 몰아내자는 처방이었다. 그것은 똑같이 논리적인 해법이었지만, 남자들은 겨우 한 남자의 폭력 때문에 모든 남자더라 사라지라는, 이동과 참여의 자유를 포기하라는 말을 들은 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조차도 모를 때가 허다한데, 하물며 그 질감과 반영(反映)이 우리와는 달랐던 시대에 살다 죽은 사람에 대해서야 어떻겠는가. 빈틈을 메운다는 것은 우리가 완전히 알지는 못하는 어떤 진실을 완전히 안다고 착각하는 어떤 거짓으로 바꾸는 일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다 안다고 착각할 때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자각할 때보다 사실 더 모른다. 완결된 지식을 가진 척 하는 이런 태도는 어쩌면 실패한 언어의 문제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대담하게 단언하는 언어는 뉘앙스와 모호함과 성찰을 간직한 언어보다 더 간명하고 덜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미래의 기억이 없고, 미래는 정말로 어두운데 그것이야말로 미래로서는 최선의 형태이고, 우리는 결국에는 늘 어둠 속에서 행동하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지금으로서는 그녀는 다른 누구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혼자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자주 필요하다고 느끼는 일이었다. 생각하는 것.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조용히 있는 것. 혼자 있는 것. 모든 존재와 행위는, 모든 확장하고 반짝거리고 소리내는 것들은 증발했다. 그녀는 자못 엄숙한 기분을 느끼며 자기 자신으로 쪼그라들었다. 쐐기 모양을 한 어둠의 핵으로,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줄어들었다. 그녀는 계속 뜨개질을 했고, 계속 꼿꼿하게 앉아 있었지만, 그래도 이제 자기 자신을 느꼈으며, 거치적거리는 것들을 모두 떨어낸 자아는 더없이 기묘한 모험을 자유롭게 할 수 있었다. 삶이 일순간 그렇게 가라 앉을 때, 경험의 폭은 무한해지는 것 같았다.  ... 그 아래는 온통 캄캄하고, 온통 퍼져나가고, 헤아릴 수 없이 깊다. 그러나 우리는 간간이 수면으로 올라온다. 사람들은 그 모습으로 우리를 본다. 그녀의 수평선은 그녀의 무한인 것 같았다. (인용 : 버지니아 울프 [등대로])

  트로이 왕의 딸 카산드라는 정확하게 예언할 줄 알지만 아무도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 저주에 걸렸다. 사람들은 그녀를 미치광이에 거짓말쟁이로 생각했고, 어떤 기록에 따르면 그녀를 가둬두기도 했다. 나중에 아가멤논이 그녀를 전리품으로 데려가지만, 그녀는 결국 그가 살해될 때 함께 살해되었다.
  그동안 젠더 전쟁의 험난한 물결을 헤쳐오면서, 나는 줄곧 카산드라를 떠올렸다. 그런 전쟁에서 신뢰성이란 그야말로 기본이 되는 힘이고, 그 측면에서 여성들은 집단적으로 다소 부족하다는 비난을 자주 받기 때문이다.
  여자가 무언가 남자를 힐책하는 말을 하면, 특히 그것이 기득권의 핵심에 놓인 남자에 대한 말이라면, 사람들은 그 발언이 진실성을 의심할 뿐 아니라 그녀에게 그렇게 말할 능력이 있는가, 심지어 권리가 있는가 의심하는 반응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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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철 카슨이 살충제의 위험을 경고한 기념비적 저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출간했을 때, 사람들은 그녀에게 히스테릭하다는 딱지를 붙였다. 책에는 카슨이 조사한 모든 내용이 꼼꼼하게 각주로 달려 있고, 지금에 와서는 그 책의 주장이 선구적이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당시 화학회사들은 기분이 나빴고, 그녀가 여성이라는 사실은 말하자면 그녀의 아킬레스건이었다...... 히스테리라는 단어는 '자궁'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왔다. 감정적으로 격한 상태를 뜻하는 그 현상이 몸속을 돌아다니는 자궁 때문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의상 남자들은 그 진단에서 면제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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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꺼내는 것, 말과 말하는 사람이 주목받고 존중받게끔 만드는 것은 여전히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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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지옥처럼, 침묵은 여러개의 동심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첫번째는 말하기를 어렵게 만들거나 심지어 불가능하게 만드는 내면의 억제, 자기의심, 억압, 혼란, 수치심, 말하면 행여 처벌이나 추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그 원을 둘러싼 다음 원은 기어이 말하고 나선 사람을 침묵시키려는 세력들이다. 창피를 주든, 괴롭히든, 죽음을 낳는 폭력까지 모함하여 노골적으로 폭력을 휘두르든 해서 말이다. .... 마지막으로 제일 바깥을 둘러싼 원에는, 설령 이야기가 말해지고 화자가 직접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하지 않은 경우라도, 이야기와 화자의 신빙성을 깎아내리는 세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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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지금까지도, 여자가 남자의 비행에 관해서 뭔가 불편한 말을 할라치면, 사람들은 으레 그녀를 망상에 빠진 인간, 사악한 음모론자, 병적인 거짓말쟁이, 그저 재미일 뿐임을 이해하지 못하고 징징대는 인간, 혹은 그 모두에 해당하는 인간으로 묘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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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과 침묵은 범인의 첫번째 방어선이다. 비밀을 지키는 데 실패하면, 범인은 피해자의 신뢰성을 공격한다. 그녀를 철저히 침묵시키는 데 실패하면, 아무도 그녀의 말을 듣지 않게끔 만들려고 애쓴다. ... 모든 잔혹행위에는 우리가 뻔히 예상할 수 있는 똑같은 사과가 따르기 마련이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느니, 피해자가 거짓말을하는 것이라느니, 피해자가 과장하는 것이라느니, 피해자가 자초한 일이라느니, 심지어 이제 그만 과거를 잊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말도 나온다. 범인이 유력한 인물일수록 현실을 호명하고 정의하는 능력이 크기 마련이라, 그의 주장이 더 철저히 득세한다. (인용 : 허먼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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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산드라 신화의 여러 버전 중 가장 유명한 버전에서, 사람들이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게 된 것은 그녀가 아폴론과의 섹스를 거부함으로써 아폴론으로부터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옛날부터도 자기 몸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과 신뢰성을 잃는 것이 연관된 일이라는 개념이 존재했던 것이다. 


  특히 여자들이 억업에 대해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남자들이 상투적으로 보이는 반응, 즉 '모든 남자가 다 그렇진 않아'라는 반응을 비판하는 말이었다.
  일부 남자들은 솔직히 "나는 안 그런데"라고 말하고 싶어서거나 아니면, 현실의 시체나 피해자는 물론이거니와 현실의 범인을 논하는 문제로부터 방관자 남성들의 안락함을 보호하는 문제로 대화의 초점을 돌리기 위해서 그런 반응을 보인다. 한 여성은 격분해서 내게 말했다. "남자들은 대체 뭘 바라는 거예요, 여자를 때리거나 강간하거나 위협하지 않는다고 상으로 과자라도 받고 싶은 거에요?"  
  여자들은 늘 강간과 살해를 두려워하면서 산다. ...... "물론 모든 남자가 다 여성 혐오자나 강간범은 아니다. 그러나 요점은 그게 아니다. 요점은 모든 여자는 다 그런 남자를 두려워하면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1990년대에 영국에서 명명된 '래드(lad) 문화'는 페미니즘에 의해 남성의 권리가 훼손되고 있다고 여긴 젊은이들이 새롭게 남성성을 강조하며 방종과 성차별을 추구하는 태도를 말한다.   ------> 요즘 우리나라의 20대 남성 현상인가??? 30년전에?!!!!

 많은 경우 강간의 동기는 남자가 여자의 욕망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그녀와 섹스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 마음이었다. 한마디로 남자의 권리가 여자의 권리에 앞선다는 생각, 혹은 여자에게 권리가 없다는 생각이다. 이렇듯 여자가 남자에게 섹스를 빚지고 있다는 생각은 어디에나 퍼져있다. .... 남자들이 자신의 감정적,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 분노로 반응하는 것은 너무나 흔한 현상이다.

  우리는 폭력과 권력 남용이 성희롱, 협박, 위협, 구타, 강간, 살인 같은 범주들로 서로 깔끔하게 분류되는 것처럼 다루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그때 내가 무슨 말을 했던 것인지 이해하겠다. 나는 그것이 자칫 미끄러지기 쉬운 비탈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었다. 우리가 여성 혐오의 다양한 양태들을 구획하여 각각 별도로 다루기보다 그 비탈 전체를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다. 구획화란 큰 그림을 조각냄으로써 전체가 아니라 부분만 보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판도라 신화에서 보통 강조하는 대목은 단지를(신들이 판도라에게 준 것은 사실 상자가 아니라 단지였다) 엶으로써 그 속에 들어 있던 온갖 재앙을 세상에 퍼뜨린 여자의 위험한 호기심이다. 
  그런가 하면 단지에 끝까지 남은 것, 즉 희망을 강조할 때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내게 흥미로운 대목은, 아랍설화의 지니들과 마찬가지로, 판도라가 내보낸 힘들이 도로 상자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혜의 나무에서 선악과를 따 먹은 아담과 이브는 두번 다시 무지한 상태로 돌아가지 않았다. (몇몇 고대 문화는 우리에게 온전한 인간성과 의식을 주었다는 점에서 이브에게 고마워한다.) 한 번 벌어진 일을 돌이킬 수는 없다. 

  여성 유명인사들의 육체와 사생활을 순찰하면서 쉴 새 없이 트집을 잡는 타블로이드들이 있다. 너무 뚱뚱하다느니, 너무 말랐다느니, 너무 섹시하다느니, 너무 안 섹시하다느니, 너무 오래 독신이라느니, 아직 애를 안 낳았다느니, 애를 낳을 기회를 놓치고 있다느니, 애는 낳았지만 적절히 양육하지 못하고 있다느니..... 그러면서 그들은 모든 여성의 야심은 훌륭한 배우, 가수, 자유의 대변인, 모험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현모양처가 되는 것이라고 가정한다.

  1986년에 작가 마리 시어(Marie Shear)가 말했듯이, 페미니즘은 "여자도 사람이라는 급진적 개념"이다. .... 1848년에 뉴욕 쎄니커폴스에서 최초의 여권대회가 열렸을 때, 미국 독립선언서를 연상시키는 여권선언서에 서명했던 백명 중 서른두명은 남자였다. 그래도 페미니즘은 여전히 여자들의 문제로 여겨졌다. 인종주의와 마찬가지로 여성 혐오는 피해자들만 나서서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다. 이 점을 이해한 남자들은 페미니즘이 남성의 권리를 빼앗으려는 계략이 아니라 모두를 해방시키려는 운동이라는 점도 이해한다.

요즘, by joo

저번 주 부터 기분이 참으로 괜찮다.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뭔가 정리된 느낌이랄까? 유후~

수국 3송이가 차례로 시들해져서 어쩌나 싶었는데 잊어버리고 있던 작약이 배송되어 와서 기분이 더 좋아짐.
그런데 어제 저녁 몽글몽글했던 봉우리가 오늘 아침이 되니 벌써 반쯤 피고 있다.
흐응... 그러지 마.. 너무 빨리 가지 말어~

좋은 것들과 좋은 계절은 너무 빨리 멀어져간다.
오늘 하나 더 주문해야지 ㅎㅎ

어제 저녁 봉우리(위), 오늘 아침 피고있는 작약(아래)

표정훈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 한겨레출판 by joo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있었다.
나른하고 몽글몽글 한 제목이 눈에 띈다. 
혼자 남은 밤, 그 곁의 책이라니! 
당장 뽑아 들어보니
표지 전면을 차지하고 있는 에드워드 호퍼의 은은한 그림.

책의 제목과 디자인도 도서 선택에 큰 몫을 차지 한다는....
(내용까지 좋으면 사야겠다고 이 때 생각했다!!!! 그,러,나,  소장은 패스ㅋㅋㅋ)

여러 동서양의 그림 중 책이 등장하는 그림을 선정해 그에 대한 사실에 작가의 상상을 덧붙여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쓴 책. 기대와는 다르게 작가의 상상력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내용은 그럭저럭.  
그래도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작가들의 그림과 이야기들을 볼 수 있어서 괜찮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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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 들어갈수록 올곧지 않아야 어리석어지지 않는다. 올곧다는 건 '바르고 곧다'는 뜻. 여기에서 '올곧지 않아야 한다'는 건 '나야말로 바르고 곧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나 자신의 노년과 내 주변 사람들이 두루 평안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어리숙할 뿐,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어리석음은 연장자의 몫이다. 노년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젊은이들이 어리석다고 여기는 어리석음이다.

  문학계는 물론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여류(女流)'로 일컬어지던 시대가 있었다. 여성 작가가 '여류 작가'로, 여성 작가의 문학 활동과 작품을 '여류 문학'으로, 미술계에서는 여성 화가를 '여류 화가'로, 바둑계라면 여성 기사를 '여류 기사'로 지칭했던 것. 국어사전에 따르면 여류는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여자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 어떤 전문적인 일에 능숙한 남자를 이르는 말'로서의 남류(男流)는 없다.
  이것은 여성에게는 전문성의 잣대 외에 성(性) 또는 젠더(gender)의 잣대가 하나 더 있다는 뜻이다. 여성이 어느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 활동하더라도 전문성의 잣대로만 평가되지 않고, '여성'이라는 측면을 다분히 차별적인 뉘앙스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 '여류 특유의 섬세함'이니 '여류 특유의 감수성'이니 하는 말은 여성의 특수성을 인정하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차별적이다.
 '여류'라는 표현이 아니어도 '여성 특유의 섬세한' 따위 표현을 쓰는 사람이 여전히 드물지 않다. 나는 내 아내를 비롯하여 나보다 섬세하지 않은 여성을 제법 많이 안다. 섬세함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 뿐 성별에 따른 차이가 아니다. 설령 그런 면이 보이더라도 그건 역사적으로 여성이 섬세함이 요구되는 일에 더 자주 투입되어 온 결과일 뿐이다. 여성이 섬세하기 때문에 그런 일을 더 자주 맡았다고 보기 어렵다.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인 것을 자꾸만 자연적인 것으로, 예컨데 "여자는 본래 그래!" 식으로 착각하지 말자.

  고독은 작은 빛의 은혜에 의해 구체적인 것이 된다. 불꽃은 몽상가의 고독을 비추고, 또 그것을 사색하는 이마를 빛나게 한다. 촛불은 백지(白紙)의 페이지의 별이다. - 인용글 : 가스통 바슐라르 [촛불의 미학], 문예출판사

  책 버리기는 책에 얽힌 추억과 경험을 지우는 일이기에 고통스럽다. 책 버리기는 그 추억과 경험의 짐을 덜어내는 일이기에 즐겁다. 많은 사람이 독서의 효용을 말하지만 책 버리는 것, 즉 기서(棄書)도 효용이 있다. 책을 버리면서 마음을 비워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내 손 밑에서, 내 압축기 안에서 희귀한 책들이 죽어가지만 그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나는 상냥한 도살자에 불과하다. 책은 내게 파괴의 기쁨과 맛을 가르쳐주었다. - 인용글 :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문학동네

  타인을 아는 것과 자기 자신을 아는 것 가운데 어는 쪽이 더 어려울까? 쉽게 답하기 힘들다. 독서는 세상과 타인을 좀 더 깊이 넣게 이해하도록 도와주지만, 그것의 가장 깊은 차원은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중략...... 독서는 곧 자기 성찰이다.

  우리는 내 생각을 나의 말과 글로 나타낼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된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자유를 실제로 행사하지 않는다면, 나도 모르게 남의 말과 글에 지배당해 결국 생각과 행동을 지배당하기 십상이다. 감히 말하기를, 쓰기를 주저하지 말 일이다.

  "다음 권도 읽을래? 줄까?"
  "아니, 아니, 됐어. 아껴 읽어야지."
  "아껴 읽긴! 이미 몇 번이나 읽었잖아."
  "멋진 남자를 한 번만 만나는 법이 있나? 그건 아니지."
  "하긴, 그건 아니지."
  "만날 때마다 새로운 남자, 그래서 늘 두근두근 기대되는 남자. 한꺼번에 다 알기보단 조금씩 알아가고픈 남자. 사랑의 기교가 참 다양한 남자. 뻔한 얘기도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남자. 끝났어도 되돌릴 수 있는 남자. 그런 남자 어디 없을까? 이 책처럼, 이야기처럼 말이지."
  "욕심하고는. 이런 남자는 많은데 말이지. 함께 밤을 지낸 뒤 무슨 급한 일이라도 갑자기 생각난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재빠르게 옷을 입고, '에헴, 그럼 이만 실계하겠소이다' 말하는 남자."
  "말만 들어도 끔찍해. 잠에서 깬 뒤에도 계속 누워 있으면서 일어나기 싫다는 듯 우물쭈물하고 있어야지. '날이 밝았어요. 다른 사람 눈에 띄기라고 하면...' 여자의 이런 재촉을 듣고서야 한숨 내쉬며 일어나야지."
  "일어나서도 곧바로 옷 입지 않고 우두커니 생각에 잠겼다가 지난밤의 일을 귓가에 속삭인 뒤 천천히 옷을 입어야지. 낮 동안 못 보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속삭이고 일어나야지."
  "그런 남자 만나본 적 있어?"
  "있지. 책 속에서."
- 인용글 : 세이쇼나곤 [마쿠라노소노시], 갑인공방   '새벽에 헤어지는 법'의 일부를 대화체로 재구성




이 년을 채우고, 2019.05.16 by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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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슨 핑계로 이사를 했었던 걸까?


벌써 일 년, 2018.05.15 by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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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카츠 [고마워 너를 보내줄게], 2017.07.03 by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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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My Girl, 2017.05.20 by j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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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영화 My girl 에서 베이다가 토마스가 죽은 후 쓰고 낭송했던 시.

슬픈 날의 기억과 오늘, 2017.05.17 by joo

(페북 돌아보기)
살아가면서 이별은 만남 만큼이나 셀 수 없이 경험하는 것이지만,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일정 나이 이상이 아니면 흔히 경험할 수 없는 이별일 것이다.
삶의 무수히 많은 이별 중 일상을 흔들 만큼의 큰 이별(생과 사에 관련된)을 겪게 되면,
이전에 없던 작은 슬픔이 가슴 속에 둥지를 틀어 가끔 고개를 내밀고 그때의 감정을 상기시키는데,
뽀는 나에게 그런 첫 존재이다.
한 생명체가 오로지 나만을 의지하고 모든 사랑과 마음을 나에게 주는 것을 느끼는 것.
반려견을 스스로 키워보지 않으면 절대 느낄 수 없는 그 기분과 책임감을 알게 해준 맑고 고왔던 내 강아지.
시간이 약이라고 일상의 슬픔이 잦아들고 무뎌지고 있었는데,
삼 년 만에 다시 찾아온 이 큰 이별을 나는 어떻게 감당해 나가야 하는지!

뽀가 꼬리를 흔들며 무지개 다리 건너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아빠를 만나서 산으로 들로 행복하게 산책을 다니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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